독립운동가

독립을 위한 불꽃, 그 뒤에 있었던 어머니 – 김상옥 의사의 모친 김점순 여사 이야기

info5609 2025. 4.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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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위한 불꽃, 그 뒤에 있었던 어머니 – 김상옥 의사의 모친 김점순 여사 이야기

 

서울 종로구 효제동, 지금은 평범한 도시의 골목이지만, 이곳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뜨거운 불꽃을 지핀 한 남자의 고향입니다. 바로 김상옥(金相玉) 의사. 그의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종로경찰서 폭파 사건과 10일간의 총격전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눈부신 항거의 이면에 있던 조용한 존재, 그의 어머니 김점순 여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어려웠던 시절, 굳건한 모정

김상옥 의사는 1889년 1월 5일, 서울 동대문 안 어의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김해 김씨 귀현경주 김씨 김점순의 3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매우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아버지는 구한말 군인이었지만, 시대의 격랑 속에서 퇴직 후 체(체를 만드는 도구)를 제작하는 소규모 작업을 시작했죠.

가난은 김상옥을 어릴 적부터 노동에 뛰어들게 했습니다. 8세 무렵부터 말총으로 체의 틀을 엮는 쳇불노동에 나서야 했고, 14세에는 대장간에서 일하며 생계를 도왔습니다. 그 곁에서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이는 다름 아닌 어머니 김점순 여사였습니다.

김 여사는 어려운 형편에도 자식들이 배우고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애썼습니다. 아들의 손에 책을 쥐여주기 위해 야학을 찾고, 교회에 보내고, 대장간에서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도 늘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자"**는 말을 잊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아들의 신념을 길러낸 어머니의 신앙

김상옥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어머니의 영향을 깊이 받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고, 신군학교와 동흥야학 등을 통해 공부에 대한 열망을 키웠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배우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았던 그는 **"나는 나라를 위해 쓸 몸"**이라는 신념을 품게 되죠.

그런 아들을 뒤에서 지켜본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자식을 앞세우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김점순 여사는 아들이 독립운동에 몸을 던지는 것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용히 기도하고, 그의 선택을 묵묵히 지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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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마지막 인사도 없이

1923년 1월, 김상옥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이후 10일간 일본 경찰과의 치열한 총격전 끝에, 서울 효제동에서 자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마지막 총성을 울린 그 거리엔, 어머니의 기도가 스며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김 여사는 사랑하는 아들을 가슴에 묻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역사에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그 아들이 남긴 흔적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심장 한가운데에서 뛰고 있습니다.


김상옥 의사와 김점순 여사,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

1962년, 김상옥 의사에게는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영예 뒤에는, 이름 없이 자신의 삶을 바쳐 가족을 지키고 나라의 내일을 키운 수많은 어머니들이 있었습니다. 김점순 여사 역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그런 분 중 하나입니다.

나라를 위해 한 생애를 바친 김상옥, 그리고 그를 길러낸 김점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 효제동 72번지. 이곳을 지나친다면, 한 번쯤 그 골목의 시간을 떠올려보세요. 조용한 골목에도 뜨거운 독립의 피가 흐르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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