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조세이 탄광 – 바다 아래에서 사라진 목소리들
바닷속으로 사라진 조선인의 삶, 조세이 탄광 이야기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아름다운 바다를 품은 이 지역에는 이제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바다 위 두 개의 배기구만이 과거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조선 탄광’이라 불리던 조세이 탄광(長生炭鑛)의 자리입니다.
조세이 탄광이란?

조세이 탄광은 일본 우베시의 우베 탄전에 속한 해저 탄광 중 하나였습니다. 우베 탄전은 야마구치현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던 석탄 생산지로, 1940년대에는 59개 탄광이 활발히 가동되었습니다. 이 중 조세이 탄광은 1914년 첫 채굴을 시작했고, 해저 갱도를 통해 석탄을 캤던 특수한 구조의 탄광이었습니다.
1941년엔 우베 탄전 내에서 세 번째로 많은 석탄을 생산할 정도로 활기를 띠었지만, 1942년 수몰 사고 이후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결국 1945년 폐광되었습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들

일제강점기 조세이 탄광은 조선인 강제동원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1939년부터 1942년까지 1,258명 이상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이곳에 동원되었으며, 대부분 충청남도와 경상북도 출신이었습니다.
이들은 모집이라는 이름의 강제 동원을 통해 부산에서 일본 시모노세키를 거쳐 조세이 탄광에 도착했고, 짧은 교습 후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작업은 대부분 위험한 채탄부 소속이었고, 2교대 근무로 밤낮 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생활환경은 끔찍했습니다. 기숙사는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고, 일본인 관리자의 감시 아래 통제가 이뤄졌습니다. 탈출을 막기 위해 숙소의 출입구는 단 하나만 열려 있었으며, 임금조차 강제저축이라는 명목으로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1942년 2월 3일 – 침묵의 바다

1942년 2월 3일,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제1 갱에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는 대규모 수몰 사고가 발생해 작업 중이던 노동자 183명이 사망했습니다. 그중 약 130명이 조선인이었습니다.
이 사고는 조세이 탄광의 실상을 외부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조선인들 사이에서 이 탄광은 공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탈출은 쉽지 않았습니다. 일본 당국은 탈출을 막기 위해 폭력과 통제를 강화했고, 많은 조선인들은 다른 지역의 탄광이나 군수 공장으로 보내져 종전까지 노역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사라졌지만 잊혀서는 안 될 이야기

지금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두 개의 배기구만이 그때의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세이 탄광에서 일어났던 일, 그리고 그 안에서 희생된 조선인들의 삶은 단순한 과거가 아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입니다.
강제동원과 수몰, 그리고 침묵.
조세이 탄광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기억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