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의 심장을 겨눈 노인의 외침, 강우규 의사 이야기

- 70세 노인의 의거! 서울역에 던진 뜨거운 외침
- "나는 인도와 정의의 이름으로 총독을 처단한다" - 강우규
- 대한독립 만세! 강우규 의사의 마지막 한마디
- 사이토 총독을 향한 수류탄! 그날의 서울역 이야기
- 나이는 숫자일 뿐… 독립을 향한 마지막 투혼
- 일제의 심장을 향한 한 방, 그가 남긴 사세시는?
우리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 그 뿌리엔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이름 없는 영웅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노장(老將)의 결기”로 불리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강우규(姜宇奎) 의사입니다. 그는 65세의 나이에 일제 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졌던, 의열투쟁의 상징과 같은 인물입니다.
📍 생애 개요
- 출생: 1855년 7월 14일 (평안남도 덕천)
- 본관: 진주
- 자/호/이명: 찬구(燦九) / 왈우(曰愚) / 영일(寧一), 강녕(康寧)
- 운동 계열: 의열투쟁
- 사망: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 추서 훈장: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1962)
🧑🏫 교육운동가에서 독립운동가로
강우규 의사는 젊은 시절부터 민족 교육에 힘을 쏟은 인물이었습니다.
1908년 영명학교, 1917년 광동학교를 설립하며 구국 교육운동에 앞장섰고, 교회까지 세워 기독교 정신과 민족정신을 함께 일깨웠습니다.
🚶♂️ 망명과 의열투쟁의 시작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가족을 먼저 러시아로 피신시키고, 자신은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이후 만주 라오허현에서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의 지부장으로 활동하며, 노인도 총을 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청년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했습니다.
💣 남대문역 투탄 의거 (1919년 9월 2일)
1919년, 사이토 마코토가 신임 조선총독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강우규 의사는 폭탄 한 개를 바짓가랑이에 숨기고 입국합니다. 거사 당일, 서울 남대문역에서 마차를 향해 수류탄을 투척했지만 아쉽게도 총독은 무사했습니다. 그러나 경찰과 언론인 등 37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이 사건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 체포와 순국, 그리고 사세시
의거 후 16일 만에 체포된 강우규 의사는 조사와 재판 내내 의연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변호사도 없이 직접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며 거사의 정당성을 주장했죠.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며 순국했고, 그는 마지막까지 시를 남겼습니다.
“죽는 줄을 알면서도 이 길을 택했다.
이 몸 죽어 나라가 살아난다면 기꺼이 죽겠노라.”
🕯 그 뜻을 기억하며
강우규 의사의 투탄 의거는 단순한 무력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라를 빼앗기고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한 민족혼의 폭발이었고,
나이를 뛰어넘은 불꽃 같은 용기였습니다.
서울역 앞에 세워진 강우규 의사의 동상은 오늘도 조용히 말합니다.
"늙은 몸이지만, 내 나라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참고자료
-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 『기려수필』
- 『동아일보』 관련 기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