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앞마을에서 피어난 독립의 불꽃"
- "김동삼, 협동학교와 민족의 자각"
- "보수의 심장 안동에서 개화를 외치다"
- "독립을 위한 묵묵한 길, 김동삼"
- "일송 김동삼, 교육으로 시작된 항일투쟁"
경북 안동 내앞마을, 유서 깊은 가옥들과 선비 정신이 깃든 그곳에서 한 줄기 혁신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중심에는 김동삼(金東三), 호는 일송(一松)—조선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가 있었습니다.
🌿 내앞마을에서 태어난 ‘긍식’, 독립운동가가 되다
김동삼은 1878년 6월 23일, 경북 안동 임하면 내앞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김긍식(金肯植), 후에 **김종식(金宗植)**이라는 이름도 사용했으며, 만주로 망명한 뒤 ‘김동삼’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가학(家學)을 이어받아 조부에게 글을 배우고, 이후 서산 김흥락에게 유학을 수학하면서 성리학적 사상에 기반한 보수적인 세계관을 갖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새로운 사상과 서양 문물을 접하며, 그는 점차 계몽운동가이자 혁신가로 변모하기 시작합니다.
🏫 협동학교 설립 – 안동에 던진 새로운 교육의 불씨
1907년, 김동삼은 류인식, 김후병, 하중환 등과 함께 내앞마을에 ‘협동학교’를 설립합니다. 안동은 유교 중심의 전통 질서가 뿌리 깊게 자리잡은 보수적인 지역이었기에, 신교육을 도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협동학교는 3년제 중등과정으로, 개화사상과 민족의식을 교육하는 장소였습니다. 김동삼은 교육을 통해 민족의 자각을 일으키는 일에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고, 이는 이후 그의 무장투쟁과 외교활동으로 이어지는 기반이 됩니다.
✈️ 만주와 상하이로 이어진 독립운동
협동학교 설립 이후 김동삼은 독립운동의 전면으로 나섭니다.
- 1911년 경학사에 참여하며 만주 망명 시작
-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가
- 서로군정서 참모장, 통의부 총장, 국민대표회의 의장,
- 1930년에는 한국독립당 고문으로 활동하며
- 끝내 일제에 체포되어 1937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습니다.
그는 무력 투쟁과 외교, 교육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이끈 총체적 지도자였습니다.
🏠 생가 ‘내앞마을’ – 선비정신과 혁신의 공존
김동삼의 생가가 있는 내앞마을은 현재도 선비 정신과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공간입니다. 잘 보존된 고택들과 더불어, 김동삼 선생의 정신이 깃든 협동학교 터는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장소로 남아있습니다.
경북 안동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내앞마을을 들러 그의 삶과 사상이 깃든 공간을 직접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 마무리하며
김동삼은 “묵묵한 실천가”였습니다.
시끄럽게 이름을 알리기보다, 조용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준비한 사람.
그의 가르침과 투쟁, 그리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희망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